코노트를 남하해, 트라키아 강에 도착한 것은 삼일 후였다. 강을 건너서, 전군이 먼스터의 영역에 들어서자, 먼스터와 코노트를 잇는 다리가 내려갔다. 먼스터 성 양쪽으로 우뚝 솟은 먼 산을 올려다보자, 그 능선이 희마하게 움직인다 싶더니, 무수한 비룡이 내려온다.
"용기사다―!"
"트라키아군의 기습이다―!"
그 순간 동요하는 보병들을 진정시키고, 궁병들이 공격에 들어간다.
"침착해라. 용기사라고 무적은 아니다. 침착하게 활을 겨누면 떨어트릴 수 있다!"
궁병을 지휘하는 슈나브 장군이 병사들을 꾸짖는 소리가 들린다. 렌스터의 말들은 태연했지만, 코노트 장병이 타고 온 말은 진정하지 못했다. 중기사가 보병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고 한 순간, 오른쪽 숲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복병인가!"
왼쪽의 산 뒤에서 트라키아의 보병이라 생각되는 무리가 나타난다. 코노트, 렌스터 연합군은 태세를 갖추지 못한 채 습격당해, 혼란 속에서, 난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용기사는 교묘하게 화살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서 견제를 계속하고, 보병과 중기사가 확실히 이쪽의 전력을 소모시켜 간다. 화살이 쏟아졌던 숲에서도 비병이라 생각되는 무리가 전열에 합류한다.
"아직도 추가 병력이 남아있던 건가!?"
"폐하, 코노트로 향하는 다리가..!"
후방을 지키던 루빈이 칼프 왕에게 달려갔다.
"다리에 무슨 일인가, 빼앗긴 건가?"
"내려갔습니다. 코노트 병에 의해서...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이 상황이라면 용기사들의 표적이 됩니다."
"레이드릭 놈, 저질러 버린 건가!"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칼프 왕의 용맹한 모습에 싸움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트라키아를 무찌르고, 먼스터에 입성하면 어떻게든 되리라 믿으며....
저녁노을이 질 무렵, 치열했던 전투가 잦아들기 시작한다. 트라키아에도 피해가 있었겠지만, 연합군 쪽은, 처음의 절반 가까이 병력이 줄어들었다. 코노트 병 중에는 도망친 자들도 있었지만, 칼프 왕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리가 있던 위치에 가까운 장소에 천막을 치고,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한다. 화톳불을 피워, 야습에 대비한다. 칼프 왕은 남아있는 장군들을 자신의 천막에 모았다.
"이것뿐인가."
"란스 장군은 보병에게 발목이 잡힌 사이에 용기사에게 당했다고...."
"코노트의 알페스 장군도 트라키아의 중기사에게...."
"남은 장군은 일곱 명... 기사들도 상당히 당한 것 같다고...."
미간에 새겨진 깊은 주름으로, 칼프 왕의 오뇌를 알 수 있었다. 감긴 붕대가 애처로운 루빈도, 분함에 몸을 떨고 있었다. 모두가 입은 상처가, 이 전투의 혹독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저희도 코노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레이드릭 놈이 무슨 일을 저지른다고 해도, 칼 왕이 멈추기는 하겠죠."
"그렇지만, 칼 왕을 지켜야 할 자들은 모두 이곳에 참전해 있습니다. 그 성에는 레이드릭의 부하와 그의 입김이 닿은 사람들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코노트에서 온 장군이 억울함과 모멸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그 트라키아의 용기사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우리들이 여기로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지껄이더군요. 물론, 은밀하게 행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것도 포함해서, 이 태세를 정리하지 않는다면, 먼스터의 지원은커녕, 우리들이 전멸하고 말 겁니다."
전멸이라는 말에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했던 루빈도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건 잘 알겠다만, 여기서 우리가 질 수는 없다. 기다리고 있는 먼스터군을 위해서도, 우리들의 나라를 위해서도, 증오하는 트라키아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는 없다."
"폐하...."
"하지만, 이대로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코노트의 장군이 조용하게 물었다.
"다리를 놓고 강을 건너, 코노트 근처까지 돌아간다. 거기서 진을 치고, 요격하는 방법밖엔 없다."
"아니라면, 희생을 각오하고 먼스터까지 들어간다, 네요."
"무모하지만, 그 두 가지 뿐이다."
어두운 분위기 속, 결단을 내려야 했던 그 때, 밖이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지고,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적습!"
"트라키아군이다!"
무장을 풀지 않았던 칼프 왕을 선두로, 장군들은 밖으로 나간다. 이미 여럿이 맹렬히 싸우고 있고, 도망치는 병사들도 있다.
"뭐 하는 게냐. 기사들은 무엇 하는 거냐!"
중기사 세일즈 장군이 외쳤다.
"저쪽에서 교전 중인 것 같습니다, 트라키아군도 교활하군..."
"뭘 그리 태평한가!"
"철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과를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 주안점이였을 겁니다."
루빈이 냉정하게 판세를 분석했다. 지적한 대로 트라키아 병사인 듯한 그림자는 일제히 물러났다.
그날 밤, 몇 번의 습격이 있었고, 연합군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친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 안개 속에서, 자군과 코노트를 잇는 강에 다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코노트군이 있었다.
"어째서 여기 있느냐?"
눈앞의 군을 지휘하고 있는 건, 그 레이드릭인 듯 했다.
"곤란하신 듯 하여 왔습니다. 지원군으로.... 다리는 잘못 내린 것 같습니다. 왕 일행이 질 경우, 트라키아 보병의 발을 묶어 쓰러트릴 생각 이였습니다. 칼 왕 폐하께도 꾸지람을 들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레이드릭의 말에, 코노트 장군들은 기뻐했다. 칼프 왕은 감사를 표하고, 전선에 가담하라 말했으나, 레이드릭은 후방을 지키겠다며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 물러나서, 트라키아를 유인하도록 한다. 조금씩이라도 공격한다면, 놈들도 초조해질 거다."
신중하게 일을 진행하고자 하는 칼프 왕은 레이드릭을 응시했다.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와 있습니다."
태연하게 행동하는 레이드릭에 불신감이 더해간다.
"트라키아군입니다. 단번에 옵니다."
"어쩔 수 없군. 요격 준비를. 여기서 버틴다."
강을 등진 칼프 왕은, 말을 몰아 트라키아군에게 향했다.
그러나, 트라키아군의 움직임은 이상했다. 진격하는 것이 아닌, 튀어 나온 병사들만 사냥해 가는... 그런 상태로 보였다. 용기사도 장난삼아 공격해, 이쪽의 초조함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젠장, 우릴 뭘로 보는 거야!"
렌스터 기사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튀어나온다. 좋을 대로 농락당하고, 상처 받고 쓰러가는 동료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트라키아 왕 트라반트의 비룡이, 하늘 높은 곳에서 천천히 원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자군의 우위는 바뀌지 않았음을 아는 듯 했다.
렌스터와 코노트의 군세는 물러났다가 돌아오는 트라키아의 공격에 농락당해, 피해는 계속 늘어만 갔다. 칼프 왕 자신도 상처를 입었고, 루빈과 그 밖의 부하들도 부축을 받으며 후방으로 돌아갔다.
"레이드릭, 네놈,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가? 어째서 싸우지 않는가? 우리들의 적은 트라키아가 아니었나?"
기다리다 지친 코노트 장군이, 다리 건너편에서 움직이지 않는 레이드릭에게 다가갔다. 그럼에도 레이드릭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트라키아 왕 트라반트의 비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트라키아군의 진격이 멈췄다.
"전군, 렌스터를 향해, 공격을 개시한다!"
침묵을 지키던 레이드릭이, 렌스터군에 섞여 있는 코노트 병사들을 놀라게 했다. 다가오는 장군을 단칼에 베어버린 레이드릭의 코노트군은, 그대로 단숨에 다리를 건너, 피폐해진 렌스터군을 습격했다.
"이럴 계획이었군!"
"칼프 왕, 칼 왕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빨리 가 주시길."
레이드릭이 창을 내찌른다. 노바의 직계를 이어받은 칼프 왕에게는 그것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상처입고 지친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주위에 쓰러진 병사들의 시체에 발이 걸린다. 옆을 보니, 세일즈가 코노트 병의 창에 꽂혀 있다. 바로 곁에 있었어야 할 루빈도 여러 개의 화살을 맞은 채, 검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함께 싸워 왔던 코노트 병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몰라, 그 상황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역시 역전의 용사 · 노바의 후손인 칼프 왕인가. 이제 슬슬 쓰러져 주시길."
"네놈 같은 배신자에게 당한다면, 큐안을 볼 낯이 없다!"
흐르는 피를 막지도 못한 채, 칼프 왕은 레이드릭과 싸움을 계속했다.
"네, 저는 배신자라서 코노트의 존속을 위해, 트라키아 쪽에 붙기로 한 겁니다."
씨익 웃던 레이드릭이 뒤로 물러난다. 그 때, 좌우에서 창병이 칼프 왕을 향해 돌진해 온다.
"그윽, 비..비겁한 놈 같으니..."
칼프 왕은 자신의 창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했다.
"저는 비겁한 놈이라는 욕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이시여, 마지막 숨통은 제 손으로 끊어 드리지요."
레이드릭은 창을 내려놓고, 허리에 찬 검을 잡았다.
"보라, 트라키아 병이여, 트라반트 왕이여! 나, 레이드릭이 렌스터 왕 칼프를 쓰러트렸다!"
"폐하―!"
적의 공격을 간신히 버티던 루빈은, 국왕의 무참한 모습을 보고, 절규한다. 거기에 간발의 차로, 보병들의 창이 그의 몸을 꿰뚫는다.
"렌스터와 코노트 병사들이여. 나를 섬기고, 목숨을 구걸한다면 살려주도록 하겠다. 그렇지 않은 자는, 전부 죽이겠다!"
레이드릭은, 베어낸 칼프 왕의 목을 들고,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트라키아군은 이미 그 때 대부분 철수하고 있었고, 전장에 남은 것은 전의를 상실한 렌스터 병과 코노트 병 뿐이였다.
상공에서 선회하던 트라반트 왕이 레이드릭을 스치듯 내려왔다.
"축하한다, 잘 했다. 이제 귀공은 코노트의 영주다."
"약속은 지켜주시겠지요?"
"그래, 귀공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 이상 지켜주도록 하지."
레이드릭이 걸어올린 목을 흘깃 바라보던 트라반트는, 다시 하늘 높이 날아갔다.
"레이드릭 님, 칼프 왕의 말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버려 둬라. 말 따위가 뭘 하겠나. 우리들은 코노트로 다시 돌아간다. 전군 철수 준비!"
레이드릭이 이끄는 코노트군은, 빠른 움직임으로 철수했다.
"....폐하."
시체의 그림자 속에서 부상당하고 쓰러진 채로 살이 있던 렌스터의 병사들이, 적이 없는 전장에서 일어선다.
"...성에 알려야만 해..."
제일 멀쩡해 보이는 병사가 불쑥 말했다.
"알려야 한다 해도, 어떻게? 우리에게 그럴 수단이 있나?"
"어쨌든 여기서 떠나야...."
혼자서는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병사가, 동료에게 부축 받으며 말했다.
"먼스터도 함락되면 안 되는데."
"큐안 님만 계셨더라면..."
"그런 말해봐야 뭐 하겠어. 여기서 우물쭈물하다간, 또 언제 트라키아군이 올지 몰라. 돌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라도 성으로 돌아가야 해... 먼스터로도 갈 수 없고, 코노트에 갈 수도 없는 이상,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렌스터 성 뿐이야."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그 젊은 기사의 말에, 살아남은 병사들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