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사키판 소설 3권 - 작별


1

얼스터를 탈출한 핀 일행은 가혹한 도피행각을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암살당할 뻔한 브룸은, 그에 격분해 철저히 렌스터의 반란분자를 사냥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만일 흔히 있는 반란의 형태의 저항이였다면 브룸도 이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무인의 가문인 프리지 가의 당주로서는 암살이라는 것이 기사에게 있을 수 없는 싸움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제국 본국에서 파견되어 온 벨드 사제가 레이드릭 등을 이용해 마구 모함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싸움에 싫증이 났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이 브룸의 명령을 각 도시의 영주들은 명령받은 이상으로 실행했다. 만약 이 시점에서 드리아스 일행이 아직도 렌스터에 사로잡힌 상태였다면 분명 처형당했을 것이다.
고액의 현상금이 걸린 리프는 대도시에는 완전히 접근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아이인 리프의 얼굴이 그렇게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성장이 빠른 아이였던 덕분에, 초상화와 실제 얼굴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져 갔기 때문이다.
리프 일행에게 있어서, 그것은 우위로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리프 일행으로 오해를 받는 여행자들이 속출했다. 덕분에 가도의 치안은 떨어질 데까지 떨어벼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제국은 그를 일부러 내버려 두었다. 현상금 사냥꾼이나 도적들에게 리프 일행이 걸려들기를 기대했기 떄문도 있지만, 상인들과 계약하여 기사를 통한 수송의 안정을 보장함으로서 북트라키아의 상인들을 지배하에 두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 결과 가도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버렸고, 핀 일행은 가도가 아닌 곳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리프와 난나에게는 꽤 힘든 여행이였다.

"이대로 노숙을 계속하다가는 아이들이 지쳐 버릴 거야."

핀의 망토 속에 감춰져 잠든 리프와 난나를 바라보며 라케시스가 말했다.

"하지만 네 왕국 전부에 우리들의 수배서가 돌고 있다. 게다가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도시에는 우리 편이 없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듯 핀이 말했다.

"보기 드물게 나약하신 말씀을. 용맹스럽게 적병과 싸워온 당신답지 않아."

모닥불 그림자에 비춰진 옆모습을 바라보며 라케시스가 용기를 북돋우듯 미소지었다.

"서쪽으로 가자."

갑자기 라케시스가 운을 뗐다.

"몇몇 자유도시라면 제국의 눈도 그렇게 엄격하지는 않을 거야. 잘하면 이자크로 도망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자크에는 갈 수 없다..."

핀이 중얼거렸다.

"리프 왕자에게 트라키아 반도를 버리는 일은 시킬 수 없다."

라케시스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렌스터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는 것은 핀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자크로 가려면 이드 사막을 넘어야 하고, 베르던으로 가려면 그란벨 제국을 지나야 한다. 둘 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위험이 컸다. 게다가 트라키아 반도에서 나와 버리면 정말 렌스터를 버리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었다. 설령 장성한 리프를 데리고 돌아온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민심이 왕자를 지지할지는 의문이다. 시구르드처럼 나라를 떠나 상금을 받고 귀국하지 못하고 떠돌건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하지만 이대로 트라키아 반도를 방랑한다면 언젠가는 제국에 발견되고 말 뿐이다. 남아야 할지, 떠나야 할지, 핀은 자기 자신에게 결단을 강요했고 그 대답을 내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서 고민하는 것은 당신의 나쁜 버릇이야. 당신에게는 나라는 같은 편이 있잖아. 게다가 이 트라키아 반도에도 우리 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

"무슨 목적으로?"

라케시스에 말에 핀이 되물었다.

"렌스터로 가던 도중에... 신세를 진 분이 프레스트에 계셔. 내가 노디온의 공주인 것을 알고 잘 대해주신 분이야. 신뢰해도 좋다고 생각해."

"그거야 고맙지만, 괜찮을까? 우리가 가면 그분께 폐를 끼칠 수도 있다."

"그래. 그런 점 때문에 좀 더 외딴 마을에 숨었으면 하고 생각했었는데, 얼스터에서 헤어진 렌스터 기사분들과 아직도 만나지 못한 것도 있고,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순 없을 것 같아서."

라테시스에 말에 핀은 입을 다문 채 계속 생각했다. 얼스터에서 에스냐에게 끼친 민폐를 두 사람은 아직도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 친절을 받기만 하고, 그 인간에게 엄청난 노고를 강요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렌스터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 왔지만, 결국 드리아스 일행과 재회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방황하는 나날을 거읍해 왔을 뿐이었다.

"핀, 내가 지금 약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핀이 계속 침묵하는 것을 보고 라케시스가 얼굴을 숙이고 중얼거렸다.

"아니, 그렇지 않다."

당황하며 핀은 대답했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해 놓고 라케시스라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엄청난 고생을 겪게 하고 있는 것은 핀 자신이었음을 그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고개를 숙인 라케시스의 머리를 살며시 끌어당겨서,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향하게 한다. 조금 안심한 것일까, 라케시스는 핀에게 체중을 맡겨 왔다.

"어쨌든 방문해 보지.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당신과 난나는 렌스터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 만약 원한다면 당신들이 이자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버리고 이자크로 도망칠 생각은 없어."

"그런가."

핀이 말한 것은 그뿐이었다.



2

"당신들은 오해하고 있군요."

자유도시 프레스트에서 네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준 군나 사제는 핀과 라케시스를 앞에 두고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도시의 제사에 모든 것을 관장하는 군나 사제는 시장에 버금가는 프레스트의 유력자였다. 정정한 태도는 연령에 걸맞는 지식과 위엄을 그 얼굴에 부여하고 있다.

"사람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그대들이 입고 있는 옷도, 그대들이 실을 뽑아 만든 것은 아니겠지요. 남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기사, 모든 것을 의지할 수는 없겠지만요."

조심스럽게, 일시적인 보호르 부탁한 핀 일행에게 군나는 그렇게 설파했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교육이 필요합니다. 장차 두 사람을 렌스터의 왕자, 노디온의 공주라고 할 것이라면 나름대로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백성을 위해서도 왕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무리한 도피행각을 벌이다가는 그럴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핀은 순순히 군나의 말을 인정했다.

"저는, 리프 님을 지킬 순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란 어떤 것인지 알려드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모든 예지를 리프 님께 가르쳐 드릴 수는 없습니다. 사제, 왕자에게는 당신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 번,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리프 공에게 얼마나 많은 자질이 있는지, 그것을 이끌어내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것이 트라키아 반도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니까요."

"감사합니다, 사제님."

안심한 듯 라케시스가 말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교육은 그녀도 걱정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배워 온 제왕학이라는 것을 정작 남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선생님의 눈을 피해 놀러갈까 생각하던 말괄량이 공주 시절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몇 년 동안, 핀 일행은 군나 사제의 아래에서 프레스트 교회에 몸을 숨기게 된 것이었다.



3

교회에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 제국이 멜겐을 침공했을 때의 전투에서 고아가 된 자들이었다. 멜겐 계곡 전투 후에 자유도시 멜겐을 방군한 군나는 의지할 곳이 없던 그들을 모두 데려온 것이었다. 멜겐의 교회는 전화를 당한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였던 것이다. 다행히 프레스트는 침공루트를 벗어나 있었기에 전쟁터가 되지는 않았다.
군나에게는 손자 한 명이 있었다. 아스벨이라고 하는, 리프와 동갑인 남자아이이다. 부모님과 함께 멜겐에 살았는데, 전쟁에서 부모님을 잃고 말았던 것이었다. 군나가 멜겐을 찾았던 것도 아들과 손자의 소식을 알아보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교회에서의 아스벨은, 리프의 좋은 놀이 상대이자 학우였다. 아이들 중에서도 항상 함께 있는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때로는 맨발로 들판을 누비고, 떄로는 조용한 교회 예배당에서 읽기와 쓰기와 역사 공부를 한다. 남자아이들끼리라는 것도 있고, 흥미를 가지는 것도 비슷한 것들 뿐이다.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가끔 따돌림을 당해서 난나가 자주 토라졌을 정도다.

"리프 님, 언젠가 함께 프레스트를 떠나 여행해요. 둘이 같이 트라키아를 돌아봐요."

바슬바슬한 앞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햇볕이 드는 풀숲 위에 드러누운 아스벨이, 똑같이 옆에 누워있는 리프에게 발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 세계를 여행하는 투명한 바람에 마음을 날리며 아스벨은 마치 미래를 보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둘이서 같이 렌스터에 가자. 같이 렌스터를 되찾는 거야."

리프는 아스벨에게 촉발된 듯 대답했다. 여덟 살이 되자 그도 분명히 자신의 입장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왕으로서의 책임감을 진정으로 자각하는 것은 훨씬 후의 일이지만 말이다. 적어도 자신이 망국의 왕자라는 것을 자각한 것은 이 무렵의 일이었다.

"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함께 리프 님의 나라를 되찾아요. 그리고 렌스터를 제국의 손에서 되찾고 나면, 그 다음은 멜겐을."

"그 다음은 얼스터를."

"다음으로는 코노트를."

"그 다음은 먼스터다."

두 사람은 제국에게 점령당한 트라키아 반도의 국가 이름을 차례로 읊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장난감을 하나하나 집어 자랑하는 것만 같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의 어려움을 아직 실감하지 못했다.

"그리고 트라키아도 해방해, 트라키아 반도를 하나로 묶는 거에요."

"그 정도까지 내가 할 수 있을까..."

기세를 몰아 아스벨이 한 말에 역시 리프는 주저했다. 트라키아 반도가 통일된다는 건, 나라를 되찾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그렇기에 꿈인 것이라고 아스벨은 열변했다. 꿈이기 때문에 이룰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할 수 있고 말고요. 리프 님이라면 분명 할 수 있어요. 저는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할게요."

아스벨은 상체를 일으키더니 리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약속한 거야, 아스벨? 그렇다면 나도 너와 함께 렌스터를 되찾겠다고 약속할게."

리프도 일어나며 아스벨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네, 리프 님. 약속이에요."

감격한 듯 아스벨이 대답한다. 아스벨은 이 때 리프가 왕자로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자임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왕자를 보좌하는 현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도 무의식중에 자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남자아이들이 남자이아다운 약속을 나누는 동안, 난나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리프 님, 뭐 하시는 거에요?"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난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

"남자끼리의 약속입니다."

즉시 대답하며 아스벨이 리프의 동의를 구했다.

"응, 맞아. 남자들끼리의 약속이야."

리프가 고개를 끄덕인다. 난나는 점점 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저에게도 약속하셨잖아요. 리프 님께서 저를 지켜 주시겠다고요."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경쟁심에 이끌려 난나가 리프에게 말했다.

"응, 약속했지."

상냥하게 리프는 대답했다. 아이라서 그런 거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아직 리프는 약속의 무게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자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 때, 간혹 사람은 팔방미인이 되어 많은 약속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는 자는 그들이 믿는 것만큼 많지 않다.

"그건 그거에요. 우리 남자들의 약속이 더 강해요."

난나의 말에 감화되었는지 아스벨이 자신을 사로잡는 유대감이 여자인 난나의 그것보다 위라는 듯 일어섰다.

"나는 난나도 아스벨도 좋아해. 친구니까."

자신이 쟁탈 대상이 되었다는 의식이 전혀 없는 리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말, 리프 님은 모두에 리프 님이시니까요. 어머님은 아버님이 자신보다 리프 님만 바라보고 계시면, 잘 삐지시니까요. 아, 이거 비밀이에요. 잊어요, 두 사람 다."

난나는 얼떨결에 말실수를 했다며 두 사람의 입막음을 했다.

"그리고 사제님이 부르고 계세요. 이제 공부할 시간이라고요."

"그렇구나. 가자, 아스벨, 난나."

리프는 두 사람의 손을 잡더니 교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이가 가까운 두 친구-난나는 친구라기보단 귀여운 여동생 쪽이였지만-가 있고, 아버지를 대신하는 핀과 어머니를 대신하는 라케시스라는 강하고 훌륭한 기사가 있고, 군나라는 선생님이 생긴 것도 운이 좋은 일이다. 얼스터에서 프레스트로의 도피했던 기억은 이미 나쁜 꿈이었던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젔다. 빗속에서 리프 일행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서 있는 드리어스와 글레이드의 모습은 색을 잃고 마치 그림인 것만 같다. 아련한 기억 속에는 에스냐와 셀피나의 다정함만이 따뜻한 무릎의 감촉과 함께 남아 있다.
헤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리프는 모른다. 핀이나 군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말해 주지는 않았다.
얼스터 이전의 기억은 이제 그에게 단편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 자신이 그 장면을 보고 기억한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부터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의 풍경인지 리프는 판단할 수 없었다. 자신의 진짜 부모인 큐안과 에슬린, 조부모인 칼프와 알피오나의 얼굴은 요람 안에서 몇 번 본 것 같다. 기쁜 듯이 웃던 그들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귀에 남아 있다.
핀의 미소와 웃음소리도 가족들 사이에 섞여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프의 뇌리에는 불길에 휩싸이는 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핀의 얼굴이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가 웃고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혹은 웃지 않는 핀을 보고, 렌스터 낙성 떄의 그의 만감의 생각이 눈물이 되어 리프의 기억에 타들어 갔는지도 모른다.
엄하고 늠름한 핀도 확실히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다같이 웃고 있을 떄 혼자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핀을 보며 놀려대는 라케시스의 쓸쓸한 열굴을 떠올리면, 그가 웃음을 되찾기를 바랐다.
어떻게 하면 핀이 웃을까, 리프는 군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건, 핀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그는 웃을 거에요. 사람은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그 무게에 괴로워하며 웃음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으나까요. 그때는 그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핀의 바람을 이루면 되는 건가요? 하지만, 핀의 소망은 뭘까요?"

평소 리프 일행을 돌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자신에게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코 말해주지 않는 핀이 떠올라 리프는 곤란한 듯 되물었다.

"남의 소망을 이뤄주는 것이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그 소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마음을 가볍게 하라는 거에요."

"잘 모르겠어요."

"핀의 소망은 조국을 되찾는 것입니다. 훌륭한 왕이 다스리는 평화로운 나라를 말이지요. 그것은 곧 리프가 제국으로부터 렌스터를 되찾아 국왕이 되어 훌륭한 정차를 한다는 뜻이랍니다."

"내가... 그런데, 그것이 핀의 바람이라면 저는..."

핀이 원한다면 자신은 그것을 해 보이겠다고 리프는 말했다.

"역시나군요. 그래선 안 됩니다."

상상대로에 전개에 군나가 호오 하고 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왜 안 되는 건가요?"

당황한 리프는 되물었다.

"그건 핀의 꿈이지 리프의 꿈이 아니기 떄문이지요."

"하지만 저도 렌스터를 되찾고 싶어요. 제국을 무찌르고 싶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럼 렌스터가 어떤 나라인지 말할 수 있나요?"

"음, 어, 아름다운 나라로,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고..."

횡설수설하며 리프는 대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억지로 붙인 것 같은 그 설명은 렌스터라고 하는 나라를 조금도 표현하지 못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리프에게 있어서 렌스터의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렌스터는... 고향이라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리프 속의 고향이라는 것의 상상 그 자체였다.

"그럼 렌스터를 되찾으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모르겠어요."

리프는 순순히 자신의 생각이 없음을 인정했다. 렌스터를 되찾는 것만이 목적이지, 그 후의 일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래서는 랜스터란 단지 물건이나 다름없으며, 심술궂은 친구에게 빼앗긴 장난감을 되찾는 것과같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핀이 그렇게 말하니까, 핀을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렌스터를 되찾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렇다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일일히 핀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고, 그건 그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럴 수가!"

놀라서 리프는 소리쳤다. 핀에게 좋으리라고 생각하는 일이 그를 파멸시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 이대로 리프가 왕이 되어도 정치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핀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사지 정치인이 아니다. 그것은 큰 부담인 동시에 다른 가신들의 시기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 군나는 내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말이죠. 왜 렌스터를 되찾고 싶은지, 되찾은 렌스터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판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핀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그 떄는 온 나라가 환하게 웃으며 현왕 리프를 맞아줄 것입니다. 리프는 모두의 미소를 좋아하나요?"

"네."

리프는 순순히 대답했다. 만족스러운 듯 군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렌스터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 알려주도록 하죠."



4

리프 일행에게 다시 시련이 찾아온 것은 프레스트에 온 지 2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브룸 암살 시도로 시작된 렌스터의 기사 사냥은 각지에서 치열했다.
렌스터 본국에서는 제베이어의 일도 있어, 반란의 씨앗은 모두 미연에 제거되었다. 의심을 받은 사람은 즉시 투옥되어 조사르 받은 후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그들을 석방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죄인 것이 아니냐고 제베이어는 주장했다. 함부로 사람들이 처형되지 않게 함과 동시에, 구스타프에게는 괜찮은 수입원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여 잘 구슬렸던 것이다. 덕분에 렌스터에서의 반란분자 사냥은 유명무실해졌다. 돈 없는 시민은 상대하지도 않고, 대상인 등이 정기적으로 의심을 받아 투옥되면 자금을 일부 내서 풀려나고는 했다. 시민들은 구스타프의 수족으로서 일하는 제베이어를 표면상으로 격렬하게 비난하는 척 하면서, 동시에 제국에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렌스터의 기사, 즉 반란분자로 의심을 받는 순간 혹독한 고문이 그 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드리아스 일행은 트라키아 산맥 깊숙한 곳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이 이들과 만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제국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한니발은 타라의 상인으로 가장해 다나로 향했다. 그란벨 본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고 해도, 자유도시 다나는 그란벨 본국이나 이자크와 트라키아 반도를 연결하는 중계지점에 해당하는 상업도시다. 상인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정보를 얻기 쉬었다.

다나에 도착한 한니발은 트라키아에서 운반한 상금속을 이용해 각국의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그는 제국의 위협이 자기 상상 이상이었고, 지금은 트라키아 반도의 패권을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 유그드랄 대륙 전체의 패권을 다투는 정도였음을 느끼게 되었다. 귀국 후에 이 일은 트라반트에게 전해지기는 했지만, 우선 트라키아의 통일이라는 왕국의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다나에서 활동할 때 한니발은 노예시장이 횡행하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했다.
군인인 그에게 있어서, 싸움이라는 것은 정정당당하게 행해져야 할 것이었다. 거기에는, 사람의 긍지를 건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종류의 싸움은 신성한 것이다.
하지만 다나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을 노예상인에게 상품으로서 사고팔고 있었다. 비록 하급병사라 하더라도 싸우는 자에게는 경의를 표해야 하고, 전사한 병사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로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것을 버리고 팔아넘긴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한니발은 고아들을 사 모으기도 하고 몰래 노예 상인들을 습격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보호해 나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유로워진다고 해도, 다나에서는 다시 노예상인에게 잡히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게다가 한니발도 언제까지 다나에 있을 수는 없었다.
한니발은 노예상인 행세를 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트라키아로 되돌아갔다. 코플과 샤를로는 이 때 그가 구해낸 아이들 사이에 있었다.
여행 도중 계속 아이들을 구해 모으며 나아가던 한니발은 아이들이 수가 너무 많아지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특히 얼스터를 넘어갔을 때 렌스터에서 도망쳐 나와 방랑하던 아이들을 많이 보호하게 되었다. 카리온과 케인 등은 이 떄 그에게 주워진 아이들이었다.
대가족으로서 곤란하다고 생각한 그는 일부 아이들을 자신의 별장으로 데려가야겠가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일단 트라키아 산맥을 가로지르려 했을 때 그는 드리아스 일행을 만난 것이었다.
드리아스 일행을 도적으로 착각하고 실수했던 한니발이었지만, 아이들 중 셀피나와 글레이드를 알고 있는 자가 있었던 덕분에 그들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트라키아의 무인임을 숨긴 다음, 한니발은 렌스터 출신 고아들과 함께 드리아스에게 자신의 산장으로 갈 것을 권했다. 이때 드리아스가 건강했다면 적장으로서의 한니발을 알고 있는 그가 어떻게 나왔느냐에 따라 사태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혹한 도피 생활 속에 얼스터에서 받았던 상처가 악화된 그는 고열로 쓰러져 있었다. 그런 상태의 드리아스를 구해달라는 셀피나의 바람도 있어 글레이드는 한니발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이들이 한니발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그의 산장에 자리잡은 지 한참 이후의 일이었다.
렌스터 기사들과 인연이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한니발 일행은 노예상인 행세를 한 체 코노트로 향했다. 프리지 가문의 영향력이 강한 코노트 주변은 치안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해안가에는 전쟁고아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는 건물도 적지 않았다. 사냥꾼 마을 몇명에는 그런 아이들을 보호하는 곳도 있었다. 폐선을 이용해 지은 고아원도 여럿 있었다. 패티와 파발도 배를 타고 이자크로 향하던 중 난파되어 코노트 부근에 그렇게 은신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라키아의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 중에는 한니발과 함께 트라키아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코노트 근처의 고아원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을 고아원에 맡긴 한니발은 그 후의 원조를 그들에게 약속했다. 그 덕분에 코노트 부근에는 원조자 불명의 고아원이 몇 개나 생기게 된 것이었다. 이들은 프리지 가문의 절대권력권 안에 있던 덕분에 이후에도 기적적으로 어린아이 사냥을 당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북트라키아를 샅샅이 정찰하고 귀국한 한니발은 기적적으로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를 바로 뒤따라 로프트 교단의 전투부대인 벨크로젠이 북트라키아에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렌스터 기사의 숙청을 브룸이 명령한 것을 빌미로 벨드 주교가 불러들인 것이다. 브룸이 프리지군 이외의 원군을 완강히 거절했기에 그때까지 로프트 교단의 정규부대는 북트라키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브룸의 암살 시도 사건을 구실로, 브룸 이외의 다른 사람도 표적이 될 우려가 있다고 한다는 이유로 벨드 주교의 경호를 위해서라고 칭하여 마침내 벨크로젠이 북트라키아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물론 이는 다가올 어린아이 사냥을 위한 준비나 다름없었다.
이 일로 인해, 제국에 반기를 들려고 한 자들에 대한 보복은 처참해졌다. 프리지 군은 저항하는 자들만 투옥하였는데, 로프트 교단은 가차없이 마을을 몰살시킨 것이다. 한 사람이 반항하면 그 뒤를 따르는 자가 반드시 나타나니 그 싹을 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멸하게 만들라는 논리였다.
이리하여, 벨크로젠의 이름은 공포 그 자체로서 북트라키아에 울려퍼진 것이었다. 그것은 각 도시의 지도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내일 제국의 순찰 관리가 프레스트에 온다고 한다."

군나 사제를 불러낸 프레스트 시장은 무언가에 겁먹은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프리지 병사라면 몇 번이고 왔지만, 이런 시골 마을 따위엔 조사할 것도 없다며 조금 뇌물을 주면 하룻밤 술을 마시며 소란 좀 피우고 곧바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당황한 나머지 무엇을 당황하고 있는 것이냐며 군나는 의아해했다. 프레스트 시장은 인격자라서 시장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세는 능숙한 편이었다. 다수 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더라도 자기처신에는 능하다. 그 덕분에 북트라키아의 왕국 틀을 버림으로써 프레스트는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게 이번에는 그렇게 안 될 것 같네. 프리지군의 순검이 허술하다고 대신 로프트 교단의 사제가 찾아온다고 하네."

"흐음. 그거 귀찮아질지도 모르겠군요."

역시 군나가 생각에 잠겼다. 우유부단하고 부패한 관리는 다루기 쉽지만, 한 가지 신념을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융통성이 없는 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허나, 별로 무서울 건 없을 겁니다. 프레스트는 시장인 당신이 제일 먼저 제국에 귀순해 보였으니 말이죠. 평소대로만 하고 있다면 바로 돌아갈 겁니다."

다소의 비아냥거림을 담아 군나가 말했다. 어려울 때 조언을 구하러 오는 것은 좋지만, 시장이란 사람은 모든 것을 신할 만한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야 좋겠지만..."

시장이 말끝을 흐렸다.

"괜찮겠지요?"

시장은 군나에게 얼굴을 돌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내 군나는 말에 숨겨진 뜻을 깨달았다. 리프에 대한 것이었다.

"두려움은 두려움 그 자체를 불러들이는 주문입니다."

군나는 시장에게 못박듯 말했지만, 그거 그것을 이해했는지는 의심스러웠다.

"아무튼, 얌전히 교회에라도 들어가게 해 주게. 부탁했네."

시장은 그렇게 말하며 군나 앞을 떠났다.
리프에 대한 것을 시장에게 들킨 것은 의외였지만, 그들을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의 눈은 언제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 시장도 군나를 믿고는 있었지만 결코 신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 염탐하는 사람 한 명쯤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스트에서 그의 지위를 위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군나와 다름없으니 말이다. 군나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말이다.
다음날, 군나는 교회 사람들을 모두 모아 평소와 같은 설교를 시작하고 있었다. 시장이 로프트 사제를 데리고 온 것은 그 이야기가 한창이였을 무렵이었다.

"아무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반항하면 가차없이 죽이겠다."

코다 사제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며 휘하의 아이히만에게 명해 순식간에 교회 안으로 병사들을 진입시켰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침착하게 군나는 물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달래며 군나는 코다 사제 쪽으로 다가간다.

"이런저런 긴 말은 않겠다. 얌전히 리프 왕자를 내주면 된다네."

코다 뒤에 숨듯 따라오던 시장이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잘도 예상하던 대로 행동하는 거냐고 생각하며, 군나는 어이가 없었다.

"리프 왕자? 그런 사람은 여기 없을 겁니다."

"거짓말이다, 놈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군나의 말에 황급히 시장이 소리쳤다. 자신이 로프트 사제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뭐, 괜찮다. 어디 차분히 이야기해 달라고 해 볼까? 시장이여, 마을의 문은 닫아 두었겠지? 아무도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코다의 말에 시장은 황급히 문을 닫으러 뛰쳐나갔다.

"저렇게 해선 많은 걸 바랄 순 없나. 아니, 행선지만 알면 앞서 가면 그만이지. 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지."

코다가 군나에게 따지듯 무섭게 말했다.

"과연 어떨지?"

군나가 대담하게 웃었다. 리프 일행이 도망쳤다면, 그의 승리나 다름없다. 자신이 하던 일은 타라 시장인 오이겐이 이어줄 것이다.


"서두르도록 해요. 할아버지는 타라로 가라고 말씀하셨어요."

동트기 전의 길을 달리며 아스벨이 말했다.
시장의 뒤를 파헤친 군나는 리프 일행을 프레스트로부터 도망치게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속도로는 멀리 도망칠 순 없었다. 뒤를 쫓기지 않도록 리프 일행은 아스벨의 안내로 토박이들만 아는 길을 남들의 눈을 피해 나아갔다. 목표인 타라는 프레스트에서 아득히 먼 동쪽에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며, 리프 일행은 나아갔다.



5

프레스트를 나온 지 며칠이 지났을까. 추격자들은 틀림없이 리프 일행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니, 가까워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매복에 가까운 형태로 적과 조우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리프 일행은 몇 번이나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는 등 복잡하고 낭비가 많은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가도는 거의 사용할 수 없었고, 길이 없는 숲 사이로 밤중에 나아갈 수밖에 없는 날이 며칠째 이어졌다. 그렇게 했음에도 적과 조우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 핀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냥을 가 있었다. 남겨진 라케시스는 아이들을 지키며 숲 속에서 야영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적에게 쫓기느라 제대로 된 식량을 구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을 배고프게 하지 않으려고 우선적으로 음식을 주다 보니 그녀는 역시 신체적으로 고달팠다. 하지만 핀이 우는 소리 없이 묵묵히 싸우고 있는데 그녀가 약한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작은 모닥불을 에워싸고 약간 졸았을 때, 갑자기 잔가지가 밟히는 소리를 듣고 라케시스는 정신을 차렸다.

"핀?"

라케시스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모두, 제 옆으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병이 덤벼들었다. 이렇게 가까이 적이 접근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 자신의 부주의함에 라케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 엘트샨의 유품인 대지의 검을 빠르게 뽑았다.

"지금 당장 도망쳐! 핀을 찾는 거야!"

적과 검을 주고받으며 라케시스는 외쳤다. 적이 몇 명인지 모르는 이상, 지금의 자신은 리프와 아이들을 지켜낼 자신이 없었다. 적어도 아이라 정도 있었다면 하는 헛된 바람이 뇌리에 스쳤다.
리프와 아이들은 짐을 챙겨 라케시스의 말에 따라 황급히 도망쳤다. 숲에서 나타난 적이 아이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려 했다. 아스벨이 씩씩하게 리프의 방패가 되려 할 때 적병이 빛에 휩싸여 쓰러졌다. 라케시스가 대지의 검에 담긴 마법의 힘을 해방시켜 적병을 쓰러트린 것이었다.

"빨리 도망쳐!"

동시에 두 명의 적을 상대하며 라케시스가 외쳤다.

"어머님!"

그렇게 외치는 난나의 손을 잡아 이끌며 리프는 달렸다. 라케시스를 도와 같이 싸우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든 밀어내며 리프는 계속 달렸다. 검 하나도 만족스레 휘두르지 못하는 지금의 자신들이 성인 병사에게 맞설 수 있을 리도 없고, 여기에 그대로 있어도 라케시스의 발목을 잡을 뿐이라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리프 님, 저기 숨을 만한 곳이!"

아스벨이 작은 동굴 같은 곳을 발견해서 가리켰다. 셋이서 서둘러 그 안에 몸을 숨겼다. 큰 동물이 동면에 썼던 구멍일까, 입구에 비해서 그 안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라케시스 님은 괜찮으실까요?"

아스벨의 말에 리프에게 매달려 있던 난나가 몸을 굳혔다.

"라케시스가 질 리 없어."

리프가 외쳤다. 칼싸움 소리는 아직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 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있는 한 라케시스는 살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적이 아직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곧 적을 쓰러트리고 마중나와 줄 거야. 그때까지는 우리들끼리 열심히 해야 해. 내 몸은 내가 지킬 거야."

그렇게 말하며 리프는 짐 속에서 빛의 검을 꺼냈다. 옛날에 리프의 어머니가 시누이인 디아도라에게 받았다는 검이다. 아직 잘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핀은 리프에게 이 검을 건네주지는 않았지만, 여차하면 에슬린의 유품인 이 검이 자신을 지켜주리라 리프는 믿고 있었다.
검을 감싸고 있던 천을 벗기고 리프는 검을 검집에서 꺼냈다.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도신이 나타났다. 그 신비로운 빛에 압도당하면서도 리프는 혼자서는 칼 끝조차 위로 향하지 못하는 자신이 분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시도해 봐도 어림없었다.
난나와 아스벨은 검이 발하는 빛을 보고 조금 힘이 난 듯했다. 리프의 좌우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검의 빛은 반대로 적에게 그들을 알리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새어나오는 빛을 눈치채고 적병이 동굴 입구로 찾아온 것이다.

"올테면 와 봐라. 나도 도망치지 않을 거야."

리프는 어떻게든 검을 잡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칼끝을 지면에서 떼지 못한 채, 잡고 있는 것만이 고작인 상태였다. 그것을 보고 적병은 히죽 웃었다. 리프 일행을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대꾸도 하지 않고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리프 님."

난나와 아스벨이 좌우에서 리프에게 힘을 보탰다. 셋이서 겨우 빛의 검을 들어올려 준비했다. 하지만 들어올린 것 이외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병은 가볍게 빛의 검을 내리치려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가라앗!"

리프와 아이들이 소리치자 그 마음에 호응하듯 빛의 검이 눈부신 섬광을 발했다. 쏘아진 빛이 적병을 때려눕혔다. 갑작스런 공격에 허를 찔린 적병은 비틀거리며 동굴 밖으로 달아났다.
아이들이 안도한 것도 잠시,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세 사람은 다시 빛의 검을 들었다.

"리프 님. 무사하십니까!"

검의 빛 속에서 나타난 것은 핀의 모습이었다.

"제 때 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핀의 말에 세 사람은 맥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싸움의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어 핀의 뒤에서 라케시스의 모습이 드러났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구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6

고생 끝에 리프 일행은 타라에 도착했다.
아스벨이 군나로부터 맡은 편지를 건네자 타라 시장 오이겐은 흔쾌히 이들을 받아들였다. 오이겐은 일찍이 군나에게 사사한 적이 있어 그의 좋은 이해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군나가 리프의 자질을 인정했다면 자신도 그것을 간파해 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리프의 교육을 맡은 오이겐은 그가 가진 강한 의지를 깨닫고 놀랐다. 아직 어린데도 그는 군나의 가르침을 잘 흡수하고 조금씩이나마 왕이 되어야 할 자로서의 자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오이겐은 점점 리프에게 여러가지를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리프는 흥미를 가진 것에 대해서라면 매우 기억력이 좋았다. 이윽고 오이겐은 이대로 리프가 성장하면 장차 북트라키아를 제국의 손에서 되찾을 뿐 아니라, 트라키아 반도의 통일도 이룩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하고 표리없는 리프의 성격에서 오는 천성의 매력이 이 무렵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윽고 리프가 배워온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을 몸에 익혀감에 따라 이 사람이라면 하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을 타인에게 안겨주게 된 것이다.
한편 아스벨은 타라의 사제 곁을 따라다니며 독자적으로 지식을 늘려나갔다.

"정말이지, 여러분이 오고 나서 집이 활발해졌어. 남자아이가 있으면 이렇게도 변하기 마련이구나. 아버님도 저렇게나 건강해지셨고. 조금 너무 많이 떠들고 계시는 것 같긴 하지만."

오이겐의 딸인 리노안이 난나와 함께 다과회 자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진 않을 것 같아요. 분명 남자분들에게는 우리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프레스트에 있을 떄의 일을 떠올리며 난나가 말했다. 여자에게 있어서 남자란 이상한 생물과도 같다. 가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그녀의 어머니 라케시스조차 핀의 마음을 알 수 없게 될 떄가 있어 남모르게 고민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도 지지 않도록 친하개 지내자."

리노안은 미소를 지으며 난나에게 말했다. 외동딸인 그녀는 난나가 온 이후 여동생이 생긴 것 같아 기뻤던 것이다.

"차 한 잔 더 드릴까요?"

리노안의 시종, 이라기보다는 놀이 상대로 온 사피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타라의 사제는 오의겐의 학우이며, 함께 군나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이였다. 사피의 여동생인 티나는 아직 한창 놀고 싶어하는 나이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큰딸인 그녀는 연하인 리노안을 돌보러 자주 오이겐의 곁을 찾아왔다.

"고마워. 당신도 앉아.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까 친구로 지내도 돼. 그게 우리도 마음이 편해."

리노안에 말에 사피가 바로 거절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 온화한 행동을 보고, 난나는 이유 없이 쓸쓸해져 버렸다. 타라 시장의 딸로서 리노안은 침착함과 위옴을 갖추고 있었고, 사피는 수녀로서의 경건함에 싸여 있었다. 철이 든 후 줄곧 제국으로부터 도망쳐 다니는 난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부러웠다.

"왜 그래, 우리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난나의 시선을 느낀 리노안이 물었다.

"아뇨, 언니들을 보고 있으면 멋지다고 생각해서..."

라고 말하며 난나는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아직 난나느 10살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리노안과 사피도 10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이 연령대의 여자아이의 1년은 큰 차이가 되어 나타난다. 난나가 리노안과 사피를 보며 어른스러움을 느끼고 동경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 난나가 훨씬 멋져. 이렇게 보고 있으면 정말 인형 같은걸. 너무 예쁘고 정말 공주님 같아."

리노안이 사무치게 난나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녀는 점점 더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 세 사람을 본다면 세 사람 전부 아름다운 소녀들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종류는 세 사람마다 달랐다.
리노안이 가진 아름다움은 지적인 아름다움으로, 곧게 뻗은 머리 하며 늘씬한 콧대도 잘 맞아, 단정한 얼굴이라는 수식어가 제일 어울렸다.
사피가 가진 아름다움은 여성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이며, 세 사람 중에서도 가장 모성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청초하고 차분한 언행은 조금 신비롭고, 몇 년만 더 지난다면 남자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정도였다.
난나가 가진 아름다움은 순전히 공주로서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흠잡을 데 없는 얼굴형이 아름다웠으며, 천성의 기품이 그것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 사랑스러움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사랑받는 종류의 것이었다.

"리프 님도, 왕자님이라던가 하시는 분이고 해서 그런가, 두 사람은 많이 닮았어."

리 말에 난나는 점점 몸을 웅크려 얼굴색을 들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헛수고를 했다. 그 모습에 리노안과 사피는 멀뚱멀뚱 마주보았다. 사피는 교회에서 많은 연인들을 알고 있었고, 리노아는 철이 들기도 전에 트라키아의 아리온과 약혼했다. 오이겐의 정치적 의도에 의한 약혼이라고는 하지만, 아리온은 매력적인 남자였다. 사춘기에 접어든 두 사람이 난나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이윽고 시작되는 호기심에서 온 여자들끼리의 대화에 난나는 그저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7

"핀, 상담할 게 있어."

진지한 표정으로 라케시스가 핀에게 말을 꺼냈다.

"타라에 온 지 벌써 2년이 되었지만, 이대로 제국으로부터 도망쳐도 해결되는 건 없어. 아이들, 아니, 리프 님을 확시히 지키는 방법을 생각해야 해."

"그렇진 하지만 우리들이 믿을 만한 용병을 모을 수도 없고, 렌스터 기사들도 뿔뿔이 흩어져서 재회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시급히 대처법을 찾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지금은 아직 거병할 때도 아니다."

냉정하게 상황을 감안하며 핀이 말했다. 아직 리프를 일군의 장수로 삼기에는 너무 어리다. 적어도 앞으로 5년은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까지 하라는 뜻은 아니었어. 하지만 또 여기서 쫓겨나는 일이 생긴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 의지할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야. 그 떄, 둘만으로는 아이들을 지켜내기 어려워져. 지금까지도 아이들을 몇 번이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했잖아.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라케시스?"

생각에 잠긴 듯한 랔시스의 태도에 문득 불안감을 느낀 핀이 되물었다.

"이자크에 가려고 해. 그곳에는 오이페와 샤난이 모두의 아이들을 데리고 흩어져 숨어 있을 거야. 내 아들 델무드도 거기 있을 거야. 이자크의 병사들을 샤난이 한데 모아 작은 군 정도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고."

라케시스는 타라에 온 뒤 줄곧 생각해 왔음을 털어놓았다. 그녀 나름대로 정보를 모아 도출했을 가능성이었다.

"너무 편의적으로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시 무모하다고 핀이 말했다. 설사 오이페 일행이 군을 조직했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제국에게 싸움을 걸 리 없다. 하물며 그들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도망다니기 벅차다면 원군은 꿈일 뿐이다.

"하지만 당신처럼 비관적으로 생각해서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 그래, 아무것도... 좀 더 주위를 잘 봐 줬으면 좋겠어..."

라케시스는 눈을 살짝 내리깔며 말했다. 역시 핀과 눈을 마주치면서 이 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 핀은 열심히 주변의 수많은 사람을 보며 판단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자신의 주위의 사람 중에서는, 바로 리프밖에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면,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라케시스는 그것이 괴로웠다. 핀이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은 리프를 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그래서, 나는 확인해 보고 싶어. 그래서 이드 사막을 넘어 이자크로 갈 거야. 만약 그곳에 아군이 있다면 반드시 데려올게. 그들이 우리에게 힘이 될지, 우리가 그들에게 힘이 될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이제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해. 따로 떨어진 마음이라는 건... 너무 슬프잖아."

"하지만 이드 사막은 위험하다."

핀이 반대했다. 제국의 힘, 아니 로프트 교단의 힘이 강해지면서 이드 사막은 자연으로서의 위협 이상의 것이 되려 하고 있었다. 지금은 제국의 공식 상인 외에는 이드 사막을 횡단하는 자는 없다. 아니, 횡단할 수 없다고 말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지금의 그 땅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 땅이라 불리며 두려움을 사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렌스터에 올 떄, 임신한 몸으로 이드 사막을 건너왔어. 이번에도 이자크까지 쉽게 도달해 보이겠어."

"벌써 정한 건가."

"그래."

핀의 말에 라케시스는 똑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의지가 굳은 것을 알고 핀은 더 이상 반대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답하면서도 라케시스는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본심은 핀이 붙잡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핀이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라케시스는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이자크에서 동료와 함께 돌아온다면, 리프 왕자도 안전해질 것이고 당신의 부담도 줄어들 거다. 렌스터를 나온 이후 왕자의 어머니 역을 대신해 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아니야. 당신이야말로, 난나의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었잖아. 내가 없는 동안, 저 아이를 잘 부탁해."

"알겠다. 리프와 난나는 제가 목숨을 대신해서라도 지키겠다. 안심하길."

그 말에 라케시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지금의 핀의 마음은 역시 리프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핀에게 있어 라케시스 또한 노디온의 기사일 것이다.

"핀, 나는 당신의 곁으로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때까지 믿고 기다려 줘."

"라케시스..."

"네."

갑자기 이름이 불린 라케시스는 고개를 들어 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기다리고 있겠다.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데리러 가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리프 님의 곁을 떠날 수는 없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줘."

"알겠어, 약속할게, 당신."

결국 핀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라케시스는 다음날 타라를 떠나갔다. 난나에게는 오빠를 데려오겠다고 말하고, 아레스에게 주려고 생각하고 있던 편지와 노디온 왕가의 표시로서 엘트샨의 유품인 대지의 검을 그녀에게 남겨주고 갔다. 만약 아레스와 만날 일이 있다면, 기사로서 충의에 순순히, 무엇보다도 우정을 소중히 한 엘트샨의 최후를 그에게 전해달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그녀를 배웅한 핀의 가슴 속이 어떠하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의 속에서, 리프와 라케시스를 저울질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틀림없이 렌스터의 기사였던 것이다. 그것은 슬픈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몇 달 후, 라케시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제국군에게 발견된 리프는 타라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제국에게 있어서 리프 등은 단지 반역자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렌스터의 왕자라는 이름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를 숨김으로서 타라 전체에 제국에 대한 반기가 있다고 몰아붙였던 것이다.
미리 오늘 같은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하고 있던 오이겐은 제국이 왔을 때 스스로 나가 시간을 끌면서 바로 리프 일행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리프와 난나는 핀과 함께 타라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교회에 갔던 아스벨은 그들과 합류하지 못했다. 그만큼 사태는 절박했다.
뒤늦게 타라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아스벨은 리프 일행을 찾아 해메다 몇년 뒤 먼스터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가장 큰 스승이 되는 세티를 만나게 되었다.
제국의 습격은 갑작스럽고 대규머였다. 오이겐에게 리프 인도를 명령했고, 그가 그를 따르지 않겠다고 몰아붙이자 대군을 가지고 타라 시내를 제압한 것이었다.
오이겐은 투옥되어 리프 일행의 행선지를 말하라며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전에 리프에게 주어진 몇 개의 도주 루트를 ㄹ결정짓지는 않았다. 그 후 그가 옥사한 것을 리프 일행이 알게 된 것은 사피와 제회했을 때였다.
리노안은 제국에서 온 영주에 의해 연금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챈 아리온이 보낸 딘에게 그녀는 구출되어 타라의 반제국 세력의 우두머리가 되어 갔다.
리프 일행에게는 많은 현상금이 걸리게 되어, 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쫓게 되었다. 그 후의 격렬한 추적을 피해 리프 일행이 피아나 마을에 도착하는 것은 2년 정도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