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 회화
그레고리
오, 이게 누구야, 라팔 님.
이 넓은 솔라넬 안에서 만나다니 별일이네.
그레고리
아니, 무시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이래 봬도 옛날에는 당신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라팔
나를 위해? 아아, 그렇군.
네 녀석은 분명, 사익의…
그레고리
으윽, 그 날카로운 눈빛과 무서운 말투.
일 님이었을 때랑은 정말 딴판이네.
라팔
그 이름을 가볍게 입에 담지 마라.
수명이 줄어들 거다, 그레고리.
그레고리
역시 그때의 당신은…
우리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던 당신은 연기였군.
라팔
그렇다면 어쩔 거지?
앞으로 네 녀석에게는 이렇게 말하면 만족하겠나?
-
만나서 기뻐, 그레고리.
이 세계에서도 열심히 하자!
그레고리
…그리운 모습이지만, 그만두라고.
공허해질 뿐이니까.
라팔
그래서? 무슨 용건이지?
이제 와서 나에게 보복이라도 하려고?
그레고리
설마, 보복이라니 나는 그런 성격이 못 돼.
잠자는 사자든 사룡이든 그냥 두고 말지.
라팔
그렇다면 더는 나에게 말 걸지 마라.
네 녀석 따위는 이제 이용 가치가 없는 존재니까.
그레고리
아, 그럼, 그래야지.
나도 두 번 다시는 당신한테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
-
하지만 라팔 님.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
내 눈에는 지금의 당신 모습도 연기로 보인다고.
진짜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2. B 회화
-
전장 한복판이 아니었다면
이대로 낮잠이라도 자고 싶을 정도야.
라팔
이해가 안 가는군.
왜 매번 이렇게 네 녀석이 내 곁에 있는 거지?
그레고리
그야 뭐, 신룡 님에게도 깊은 생각이 있겠지.
나를 당신의 감시 담당으로 쓸 생각이라든지.
그레고리
당신의 힘은 특출나게 강하지만
그 힘을 과신해서 엉겁결에 폭주하기 십상이니까.
-
나처럼 지적이고 냉정한 남자가 곁에 있으면
균형이 잡힐 거라는 계산 아니겠어.
라팔
소극적이고 겁 많은 남자를 잘못 말한 것 아닌가?
애초에 나는 혼자서도 문제없이…
그레고리
라팔 님.
전장에서는 기습에 주의하는 게 좋아.
라팔
이형병이 쏜 화살인가… 건방진 짓을 하는군.
그레고리
내 활약이 어때?
조금은 이용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라팔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나 혼자였다면 저 정도 기습은 피할 수 있었다.
라팔
그 눈빛은 뭐냐?!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분명하게 말해!
그레고리
아니, 딱히 없는데.
라팔 님은 강하구나~ 싶어서.
라팔
그래, 나는 누구보다 강하다.
이 전황도 나 혼자서 뒤집어 주지.
-
네 녀석은 거기서 얌전히 보고 있어라.
나를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
내가 눈을 떼는 바람에 당신이 당하기라도 하면
신룡 님을 볼 낯이 없거든.
라팔
…끝까지 따라올 작정이군.
뭐, 좋아. 모쪼록 내 발목은 잡지 말라고.
그레고리
그럼, 그럼.
분부대로 할게, 전 주인님.
3. A 회화
그레고리
처음에는 이걸 어쩌나 싶었는데,
우리 조합도 꽤 그럴듯해졌는걸.
라팔
그만큼 의문이 드는군. 너는 어째서…
내 곁에서 힘을 합쳐 함께 싸울 수 있지?
-
나는 한때 너와 네 동료를 배신한 자일 텐데?
그 때문에 잃은 목숨도 있고.
라팔
나를 원망하지 않나?
또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안 드나?
그레고리
그야 가슴 깊이 원망했고 화도 났지.
솔직히 지금도 분노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어.
-
하지만, 착각하지 마.
그 분노의 화살이 라팔 님만을 겨누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레고리
나는 주군의 비밀을 알아차리지 못했어.
당신이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민했는지도 말이야.
-
그런 한심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
당신을 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그레고리
그래서 나는 결심했어. 이번에야말로, 이 세계에서는,
당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고.
그레고리
만약 그러지 못해서 당신이 다시 한번 우리를 배신한다면
그때는 내 손으로 반드시 끝내겠어.
-
그런고로, 뭐라고 하든
나는 당신 곁에서 떠날 생각 없어.
라팔
재미있군.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남자를
다 알고서도 곁에 두라는 건가?
그레고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란해.
나는 당신의 감시 담당이니까.
라팔
좋다. 내 곁에서 나를 따르면서
열심히 감시해 봐라.
-
단, 설령 그날이 오더라도
죽는 건 네가 될 거다, 그레고리.
그레고리
지금의 라팔 님에게
그런 걱정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
미안한 마음에 차갑게 뿌리치려고 하고
고마워하면서도 솔직해지지 못하는데.
-
그런 라팔 님이 우리를 배신할 리가 없지.
아마도… 아니, 절대로.
라팔
전부 네 망상이다.
내가 타인의 기분을 살피다니, 그럴 리 없다.
그레고리
하여간 말은 잘해.
빨개진 귀나 보라고.
그레고리
하핫.
나는 그렇게 알기 쉬운 편이 좋아.
-
더 이상 거짓된 가면에 속을 일도 없겠어.
드디어 당신의 민낯을 봤으니까 말이야.